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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article

버지니아 울프

by noir_ 2016. 9. 28.


나는 평론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유령과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유령은 여성이었습니다. 그 유령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나서, 나는 그녀를 가정의 천사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평론을 쓰는 동안 나와 종이 사이에 끼어든 것은 바로 그녀였습니다. 나를 괴롭히고,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나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하여 결국 그녀를 죽이게끔 한 것도 바로 그녀였습니다. 더 젊고 행복한 세대인 여러분은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내가 가정의 천사라고 할 때 그 의미를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녀를 가능한 매우 간략하게 묘사해 보도록 하지요. 그녀는 매우 동정심이 많습니다. 그녀는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그녀는 전적으로 헌신적입니다. 그녀는 가정생활의 까다로운 기술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입니다. 그녀는 매일 자기 자신을 희생합니다. 만약에 닭 한 마리가 있다면, 그녀는 제일 맛 없는 부위를 집을 것입니다. 만약 방에 환기구가 있다면 그녀는 바로 거기에 앉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그녀는 어떤 일이든 자신이 다 떠맡았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나 바람 같은 건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항상 다른 이의 마음과 바람에 공감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무엇보다(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녀는 순수했습니다. 그녀의 순수함은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꼽힐 것이었지요. 그녀의 홍조, 얌전한 태도 같은 것들이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빅토리아 시대 말기) 모든 집에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녀를 바로 첫 단어를 쓰자마자 마주쳤습니다. 그 천사의 날개 그림자는 바로 내가 쓰고 있는 종이 위에 드리워졌습니다. 나는 방 안에서 천사의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명한 남자가 쓴 소설을 비평하려고 손에 펜을 쥐자마자, 천사는 내 뒤로 살그머니 다가와서는 속삭였습니다. “아가씨, 당신은 젊은 여성이에요. 당신은 남자가 쓴 책에 대해 쓰고 있답니다. 호의를 베푸세요. 부드럽게 대하세요. 듣기 좋은 말을 해주세요. 기만하세요. 당신의 성이 가진 모든 기술과 책략을 동원하세요. 당신이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세요. 무엇보다 순수함을 지키세요.”


여기서 내 자신이 한 것으로 인정받을 만한 한 가지 일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그 공로는 원래대로 하자면 상당한 액수의 돈(대략 연간 500파운드 정도라고 해둡시다.)을 물려주신 훌륭하신 저의 선조에게 돌려야 하는 것이지만 말이지요. 따라서 생계를 위해 저의 매력을 관리하는 데 매달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나는 몸을 돌려서는 그 천사의 목을 죄었습니다. 그녀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요. 법정에 서게 된다면, 자기방어를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이 나의 항변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 천사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저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 천사는 내 글의 심장을 잡아채 갔을 것이니까요. 나는 종이에 펜을 대자마자 자기 자신만의 정신이 없다면, 또한 인간관계와 도덕, 성에 관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한 편의 소설도 비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모든 질문은 가정의 천사의 말을 따르면 여성이 자유롭고 공공연하게 다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은 매력이 있어야 하고, 화해할 줄 알아야 하며, (노골적으로 말해) 성공하고자 한다면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종이 위에 천사의 날개가 그림자를 드리우거나 후광의 광채가 비치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잉크병을 집어 들고는 그녀를 향해 던졌습니다. 그 천사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가상의 존재라는 그녀의 본질은 그녀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실체보다 환영을 죽이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지요. 내가 결국 그녀를 해치웠다고 생각할 때면, 그녀는 언제나 다시 기어왔습니다. 마침내 그녀를 죽였다고 이제 와서 우쭐거리지만, 싸움은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그리스어 문법을 배우거나, 모험을 찾아 세상을 떠도는 데 썼다면 더 좋았을 법한 길고 긴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여성 작가라면 모두 맞닥뜨리게 되는 경험이었지요. 가정의 천사를 죽이는 것은 여성 작가의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펭귄클래식판 자기만의 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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