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극장에서는 그래.
스크린 향이 있다는 걸 아니. 기묘한 냄새야. 우린 쿠션 달린 의자가 아니라 계단에 꿇어앉아 있는 것 같아. 한 칸씩 낮아지거나 높아지면서. 누군가는 나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아래 있는 머리들을 볼링공처럼 보이네. 밀어내면 멀리 굴러가버리는 것들.
엔딩크레디트가 끝없이 올라가는 티셔츠를 입고 싶어.
영사기의 불빛을 내 목젖과 눈꺼풀 위까지 쐬어도 좋다.
이상하지. 불 꺼진 자리에서 너의 이름을 읽는 일은 왜 언제나 어려울까.
너는 어두울수록 맑아지는 게 있다고 했지만 나는 컴컴한 공간에서 매번 어리숙했다. 숨쉬는 걸 잊어버려서, 나중에는 귓가에 다른 사람의 숨소리가 닿는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나는 어둠 속에 하얗게 떠오른 너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이런 걸 사람들은 시네마라고 부르는 걸까.
다리와 팔이, 뜨거워서 만질 수 없는 가슴이 얼굴이 녹아버리고
그렇게 공중에 떠올라도 좋다. 발을 바닥에 붙이고 있으면, 누가 바라봐주나?
자전하면서 없어지는 불빛들
나는 누굴 만졌던 손끝을 기억하고 만다.
모두 떠나고 나면
흐트러지는 공간으로서 눈뜨는
어둠이 있어
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시간은 처음의 모습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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