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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lit

장수양, 사랑의 조예

by noir_ 2021. 8. 14.

사랑의 조예

 

 

그는 멸종한 식물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가 맡고 싶어 전화로 청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난 달려가 그의 집 앞에 무릎을 꿇고

언 밤을 기다렸다

 

흰옷을 입은 그가 밖으로 나왔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발끝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한참 뒤에야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식물은 오래 물위를 달려왔어 가는 리와 새처럼 활동적인 부레를 달고

간혹 노래도 불렀어

하나뿐인 잎에 긴 끈이 달려 하늘손이 쥐고 이끄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

 

한때는

떼 지어 이동한 몸이었지

함께여도 물에는 슬픔이 비치지만

자신의 숨소리는 듣지 않아도 돼

 

바깥으로 달리는 식물의 이야기야

 

아직 달리고 있는지

 다시 무리를 지었는지

이후를 듣기 위해 나 매일 빌고 있어

 

반복하여 찾아가고 있어

 

사람들은 내게 깊은 물밑에서 나와

잠수를 그만두고

더는 무릎을 꿇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해주지

하지만 물에서 나온 물을 , 모래 없는 해변을 아무도 몰라

 

나는 빌고 빌어

결코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았어

 

처음 그들은 물위를 한없이 나아가는 나무처럼 보였다고 하였지

 

그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나는 양손으로 찬 어깨를 안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산 외투는 무겁고 단단했다

걷기 어렵지만 오래 입겠구나

사라져도 여기겠구나

그 밤 그는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내일도 얼마든지 무릎을 꿇으러 가리라

마음으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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