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조예
그는 멸종한 식물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가 맡고 싶어 전화로 청하였으나 되지 않았다
난 달려가 그의 집 앞에 무릎을 꿇고
언 밤을 기다렸다
흰옷을 입은 그가 밖으로 나왔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발끝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한참 뒤에야
목소리가 들렸다
이 식물은 오래 물위를 달려왔어 가는 리와 새처럼 활동적인 부레를 달고
간혹 노래도 불렀어
하나뿐인 잎에 긴 끈이 달려 하늘손이 쥐고 이끄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
한때는
떼 지어 이동한 몸이었지
함께여도 물에는 슬픔이 비치지만
자신의 숨소리는 듣지 않아도 돼
바깥으로 달리는 식물의 이야기야
아직 달리고 있는지
다시 무리를 지었는지
이후를 듣기 위해 나 매일 빌고 있어
반복하여 찾아가고 있어
사람들은 내게 깊은 물밑에서 나와
잠수를 그만두고
더는 무릎을 꿇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해주지
하지만 물에서 나온 물을 , 모래 없는 해변을 아무도 몰라
나는 빌고 빌어
결코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았어
처음 그들은 물위를 한없이 나아가는 나무처럼 보였다고 하였지
그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나는 양손으로 찬 어깨를 안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산 외투는 무겁고 단단했다
걷기 어렵지만 오래 입겠구나
사라져도 여기겠구나
그 밤 그는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내일도 얼마든지 무릎을 꿇으러 가리라
마음으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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