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인쇄소에서 퇴근하고, 동생이랑 열시 반에 보기 전에 시간 딱 되길래 봤다. 작년부터 평이 하도 좋길래.. 잔잔한 영화 좋아하는 편이고 남들이 지루하다고 하는 영화도 괜찮은 편이고(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도 괜찮았고 블라인드 시사회로 본 조이도 괜찮았다 시놉시스만 보면 정말 노잼영화일 것 같은데 오히려 몰입도는 이게 더 좋았음. 너무 몰입해서 본 나머지 보면서 스트레스도 왕창 받아서 다 보고 나왔을때는 머리 아팠을 지경) 내가 영화보는 눈이 그렇게 빻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 기대에는 살짝 못 미쳤다. 뭐야 레즈비언이잖아~ 개노잼이다~ 이런 문제가 아니라.
색감이나 소품은 아주 아름다웠고.. 걱정했던 것처럼 관객중에 무례한 사람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몰입은 덜되서 아쉬웠다. 잔잔함 이면에 휘몰아치는 감정과 긴장감으로 딱 조인 정적인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하여간.. 은유적인건 좋은데 서사가 너무 은유적이어서 문제였던 것인가. 멋은 부린 것 같은데 내게 멋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테레즈가 처음 흘린 눈물이 이해가지 않으면서부터 영화와 나 사이의 거리가 조금 생겨난 것 같다.
보고나서 약간 동요하지 않은 면은 없었으나(지나간 연애들이 스쳐지나가기도하고) 이제 내 예민도와 시력은 설사 길 위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선이 있다고 해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적당히 무뎌졌기 때문에..
덧. 스크린에서 계속해서 매혹적으로 그려지는 캐롤의 매력이, 정작 관객인 나는 집어삼키지 못하는게 아쉽다. 케이트 블란쳇은.. 대배우이고 함께 출연한 루니 마라가 열세살부터 팬이었으며 기타 등등 다 알겠는데.. 1950년대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테레즈에게는 너무나 여신같을 수 있겠으나(오그라드는 단어가 아닌데 인터넷에서 남발하는 바람에 쓰면서 굉장히 문장이 가벼워지는 효과가 생겨나는군), 캐롤을 둘러싼 사회적인 환경과 그녀 정체성의 충돌이 너무나 비극적일 수 있으며 캐롤과 테레즈의 사회적 신분의 격차가 드라마를 더욱 증폭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겠으나... 그리하여 캐롤의 숨막히는 삶 속에서 그저 순수하게 자신만을 바라보는 테레즈가 축복임과 동시에 자신을 무너뜨리는 불운이어 회피하고싶어지지만 결국에는 붙잡아야만하는 사랑일 수 있겠으나...쓰다보니까 존나 감독의 의도가 보이는 것만 같다.. 수용자인 내 입장으로서는 캐롤은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사랑을 할 여건은 안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니까 그것이 문제.(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느냐의 문제) 뭐 내가 씨부려봤자 테레즈가 좋다는데 내가 어쩌겠냐만은..
사랑이 동등한 위치에서 시작되지 않는 것이 드라마를 이끌어내는 요소일 수는 있겠지만 인생에서 단 한번 뿐인 폭풍같은 사랑이 굳이 이기적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조금의 찝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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