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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lit

백은선, 사랑의 역사

by noir_ 2018. 11. 15.

 너랑 나는 화단에 앉아 사랑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틀고 그걸 다시 녹음하고 녹음한 걸 다시 틀고 다시 녹음하고 또 틀고 또 다시 녹음하고 이런 식의 과정을 계속해서 거치면 마지막에 남는 건 돌고래 울음소리 같은 어떤 음파뿐이래 그래 그건 정말 사랑인 것 같다 그걸로 시를 써야겠다 그렇게 얘기하며 화단에 앉아 옥수수를 먹었다

 너는 내가 진통할 때 전화를 했다 나는 죽을 거 같아 전화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너는 내기에서 이겼다고 그럴 줄 알았다고 좋아했다 도무지 어떤 일도 끼어들 수 없는 비좁은 벽 사이에서 혼자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며 울었다 윤은 소파에 앉아 안절부절 핸드폰을 보고 나는 오늘 유 캔 네버 고 홈 어게인을 다시 읽었다 그 시가 제일 좋다 나는 그렇다

 옥수수는 은박지에 싸여 있었다 김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옥수수였고 옥수수를 먹는 일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썩 잘 어울리니까 그런데 거꾸로, 돌고래 울음을 녹음하고 틀고 녹음하기를 반복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모른다 모르지만 너무 슬플 것 같다

 오늘은 너랑 소파에 앉아 시간이 길게 길게 늘어지다가 뒤집혀버리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쩔 때는 림보에 갇혀 있는 기분도 든다 그치만 행복한 무엇이 무형의 뿔처럼 조금씩 자란다 나는 현상과 감정에 무연해지고 있다 너도 그렇다고 했다 그 이후에 무엇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한다고 나도 생각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 이후와 이후에 씌어진 시와 그 시의 이후에서부터 다시 씌어진 이후와…… 이것을 무수히 반복한 다음

 바다에서 떠내려온 닳고 반짝이는 유리조각을 주웠다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다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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