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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lit

송승언, 액자소설

by noir_ 2020. 10. 9.

네가 잘 때 나는 내 나이보다 오래된 책을 읽었고
네가 깨어났을 때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건물에 갇힌 사람이 건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건물에 갇힌 사람만 살아남는 이야기였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 아팠어

읽어보진 않겠지만 분명 슬픈 이야기겠지
너는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고
우리는 함께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우리의 작은 눈으로는 다 볼 수 없는 세상을 보았다
고가도로 아래 흘러가는 내로
물오리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지만
그래도 좋구나
말했다

좋은 세상이야
아무것도 새롭지 않지만
그런데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말이야
그 소설이 말하려던 건 무엇이었을까?

묻자
무슨 소설?
하고 되물었다

계단을 내려오며 문득
모든 게 이미 겪은 일처럼 느껴져
말하며 불안해하자
그렇지 않아, 안아주었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이제 모든 일이 시작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다정하게



송승언, 액자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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